본문 바로가기

스마트폰 이야기

단통법 시행 후, 통신요금은 줄어들었는가?

이전 글에서는 스마트폰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단통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사진에서 보시듯,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내세우는 단통법의 효과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쥐라기공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무려 20여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저는 영화보다 원작인 책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박사는 공룡이 많아졌다고 주장하는데, 공원 관리측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공룡 수가 1000마리로 나타난다는 거죠. 논쟁 끝에 박사가 공룡 수 입력 제한을 풀어버리고 다시 탐색을 누르자 공룡 수는 1000을 넘어 계속 올라가고, 그때서야 공원 관계자들이 허둥대는 대목이 있죠.


저는 정치뉴스를 보면서 그 대목을 자꾸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 자신들에게 보이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치권 밖에도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의 표도 마찬가지고, 단통법 이후에 통신요금이 줄었다고 용역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신비는 줄었을 수도 있습니다. 단말기 할부금이 통신요금이 아니라고 한다면 단통법 시행 후 통신요금이 줄었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자, 비교해 보겠습니다.


1. 단통법 시행 전

- 요금에 따라 단말기 할인 차이가 없거나 적음.

- 지원금은 정해져 있지 않음.

- 비싼 요금제는 6개월만 쓰면 되고 이후엔 요금 낮춰도 위약금 없음

-  24개월 약정이지만 중도에 해지해도 위약금 없음. 사용료 할인 위약금만 있음.


그때는 사실 보조금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판매장려금에서 고객에게 할인해줄 금액과 이득으로 남길 금액을 판매자가 임의로 정하는 거였죠. 그래서 호갱-어수룩한 고객- 에게는 이득을 많이 남기고, 뭘 좀 아는 고객에게는 많이 할인해 주고... 그런 차이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매자들 대부분이 한 건당 적정한 이윤을 남기고 팔았습니다. 주변 다른 매장과 경쟁을 해야 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고객들은 요금제에 상관 없이 비슷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금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제일 비싼 요금제와 제일 싼 요금제의 지원금 차이는 7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처음에 비싼 요금제로 구매했더라도, 7개월째부터는 저렴한 요금제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당시 판매 조건은 대부분 75요금제였는데요, 6개월간 요금은 45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18개월 동안은 35요금제만 써도 됩니다. 이 때, 18개월간 요금은 63만원이고, 24개월간 요금 합계는 108만원입니다. 부가세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1만1천원짜리 표준요금제로 바꿔도 됩니다. 그래도 위약금이나 반환금이 없었죠. 이렇게 바꾸면 24개월간 요금은 63만원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통화량이나 데이터 이용량이 적은 사람도 최신형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하는 편이 더 저렴합니다. 보조금 차액은 7만원이지만 요금 차액은 24만원이니까요.


물론, 일선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는 처음부터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통신사에서는 매장별로 요금제 목표를 주고, 요금제 평균을 정해서 미달하면 정산금을 차감하니까요. 그런 부당한 조건은 단통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점은, 단통법 시행 전에는 24개월 약정을 했더라도 6개월 이상만 사용하면 중도 해지해도 보조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할부금은 내야 했습니다. 그건 그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똑같습니다. 


2. 단통법 시행 후

- 요금제에 따라 단계별로 할인 금액 차이. 공시지원금이 정해져 있음.

-  24개월 이내에 요금제 낮추면 보조금 차액만큼 다음달 요금에 청구

-  중도에 해지하면 위약금 있음.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이 달라지고, 중도에 요금제를 낮추면 그 차액만큼 반환해야 했습니다. 요금제를 높이면 그 차액만큼 요금에서 상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요금제를 약정기간이 끝날 때까지 써야 합니다. 게다가 약정기간이 끝나기 전에 중도 해지하면, 지원받은 보조금을 남은 기간만큼 일할계산해서 반환해야 합니다. 더우기, S 통신사와 L 통신사는 6개월 이내에 중도 해지하면 일할 계산이 아니라 지원받은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합니다. !! 이건 소비자보호원이나 권익위원회에서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요?


1과 단순 비교하면 요금 차액이 무려 72만원이나 납니다. 차액 4만원 x 18개월. 그리고 중도에 요금제를 낮추면 보조금 반환위약금이 있습니다. 그걸 반환하지 않으려면 또 무슨 부가서비스를 가입해야 합니다. 처음 개통할 때 가입하지 않으면 중도에 가입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마트폰 사용량이 적은 사람이 최신형이나 고급기종인 기함급 단말기를 사용하려면 거의 출고가 전액을 부담해야만 합니다. 요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아니면 보급형이나 저가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자,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통법을 도입하면서 이동통신사와 방통위는 이제 시장이 깨끗해지고, 모두가 공평하게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시장도 깨끗해지지 않았고, 모두가 공평하게 휴대폰을 구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공개적으로 일어났던 대란이 이제는 비밀 매장이나 폐쇄 가톡방, 비밀 밴드... 이런 곳에서 단통법 시행 전보다 더 은밀하게 할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단통법 도입하면 없어질 거라고 방통위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일부 사람만 혜택을 보는 상황이 더욱 더 심해진 것이지요.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격을 비교하고 저렴한 곳에서 상품을 사는 것이 범법행위가 되었다는 겁니다. 공시된 보조금보다 더 할인을 받으면 판매자도 단통법 위반이고, 구매자도 단통법 위반입니다. 법률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는 거죠. 어차피 혼탁한 시장, 그냥 싸게 사는 것과 범법자가 되어 싸게 사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단통법은 말 그대로 단지 통신사만을 위한 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단통법 시행 이후에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이 늘어났다는 뉴스를 보셨을 겁니다. 이용자들에게 지원하는 지원금이 줄어들었다는 얘기죠. 일부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번호이동할 때에만 할인을 많이 받았지만, 그런 차별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공시지원금은 요금제가 같으면 똑같지만 위에서 말한 은밀한 추가 할인은 대부분 번호이동에만 주어집니다. 신규가입에도 주어질 때가 있긴 하지만, 특히 기기변경에는 거의 혜택이 없습니다. 기기변경에 혜택이 많다면, 출시된지 좀 되었지만 안 팔려서 쌓여 있는, 인기 없는 장기 재고 단말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통법이 효과가 없으니까, 이제는 완전자급제를 얘기합니다. 단말기를 팔지 말고 통신서비스만 제공해라... 그렇게 하면 과연 통신요금이 줄어들까요? 물론, 줄어듭니다. 단말기 할부금이 통신요금에서 제외되니까요. 하지만 통신이용자들의 전체 비용이 줄어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는 비관적입니다. 지금 A 사의 i 단말기는 거의 자급제와 차이가 없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통신사에서 약정에 따라 할인해주는 금액밖에 없죠. 제조사에서는 거의 할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A 사의 단말기가 높은 값에 판매되고, 중고 가격도 높은 건,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급제가 시행된다면 한 가지, 소비자가 기대할 수 있는 이득이 있습니다. 지금은 보조금을 모두 합해서 통신회사에서 위약금을 정합니다. 하지만 자급제가 시행되면 위약금을 계산할 때 제조사 보조금은 빠지고 통신회사 보조금만 위약금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하겠지요. 통신사가 준 보조금만 위약금 대상이 된다는 점이 유일한 기대효과입니다. 이건 제조사가 지금처럼 보조금을 쓴다는 조건으로 가정했을 때입니다.


자급제를 시행하든 말든, 통신시장은 단통법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소비자들에게는 가장 이득입니다. 요금이나 지원금에 대한 위약금 없이, 처음에 구매할 때 할인을 해주는 방식이 소비자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통법이 생기면서 이런저런 위약금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