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이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우선, 축하합니다.
최종예선 후반기에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기력으로 실망도 안겨 주었고, 본선에 진출한 게 아니라 진출'당한'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로는 본선에 가서도 조별리그 탈락이 뻔할 거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큽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거스 히딩크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정작 한국축구협회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히딩크 본인이 한국팀 다시 맡고 싶다고 외국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의 스포츠뉴스에도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리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일구어 냈던 히딩크에게 다시 맡겨야 한다고... 어이가 없습니다. 취임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감독이 엄연히 있는데...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신태용
냄비근성... 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미봉책이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히딩크가 와서 러시아월드컵 한 번 지휘한다고 해서 한국축구가 달라질까요? 아닙니다. 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이 부진할 때, 축구전문가, 평론가, 해설위원이라는 사람들 중에서는 최종예선에서 탈락하는 편이 한국축구 발전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표팀이 망해 봐야 K리그가 산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월드컵에만 매달리는 행태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달 전 신태용이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을 때, 저는 또 일회용으로 쓰이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희생양, 총알받이... 제가 신태용감독 선임을 보면서 떠올린 단어들입니다. 축협에서는 최종예선 통과를 비관적으로 봤을 겁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울 사람이 필요했겠죠. 그래서 발탁된 사람이 신태용입니다. 지금 감독을 히딩크나 다른 외국인으로 교체한다면 협회는 진짜 신태용감독을 일회용으로 생각한 겁니다.
적어도 한국축구는 신태용에게만큼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K리그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던, 아니, 대표팀에서는 억울하게 배제되었던 선수입니다. 신태용은 한때 K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것이 아니라, K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입니다. 신인왕, MVP 2회, 5년 연속 베스트 11. 60-60 클럽... 천안과 성남에서 일구었던 일화의 전성기에는 신태용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리그 3연속 우승을 두 번이나 달성한 일화의 레전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23경기 3골의 기록이 전부입니다. 1996년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에는 대표팀에 선발된 적도 없었죠.
국가대표 감독이 된 사람 중에서 국가대표 경력이 신태용보다 적은 사람은 없습니다. U-23 올림픽대표팀 감독, U-20 대표팀 감독... 두 대회에서 모두 조별예선에서는 국민들을 흥분시키며 8강 16강에 올랐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실망스럽게 탈락했죠. 그래서 예선용이라는 얘기도 나왔는데 국가대표 감독을 시켰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희생양이 아닌가 생각한 겁니다.
외국인 감독이 아니면 안 된다? 일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8년째 이란 대표팀을 이끄는 케이로스 감독처럼 장기적으로 맡길 게 아니라면, K리그를 잘 아는 한국인 감독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축구의 뿌리는 K리그라면서요? K리그가 살아야 대표팀도 사는 건데, K리그를 잘 아는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K리그도 살고 대표팀도 사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신태용호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에서 참담한 성적으로 탈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감독 한 명이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히딩크는 바꿨다구요? 그렇다면 히딩크에게 해줬던 것처럼 지원해 줘야 합니다. 리그 일정까지 조정해 가면서 거의 1년간 대표팀 선수들이 합숙하면서 체력훈련하고, 조직력 다지고... 그정도 지원에 심판판정까지 도와준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면 신태용감독도 좋은 성적이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정도 지원해 준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신태용감독이 치렀던 두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신감독의 대표팀은 두 번 다 조별예선을 1위로 통과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걸 기대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으니, 대회 마칠 때까지 신뢰하고 믿어 주자는 겁니다. 감독 자리에 앉혀 놓고는, 외국인 감독으로 바꿔야 한다. 히딩크 다시 불러와라... 이따위 소리로 흔들어 대면, 감독이 팀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요?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만을 보고 신태용에게 실망했다는 사람들은 신태용의 말을 듣고 행동을 봐야 합니다. 마지막 2경기는 지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고, 자신의 말대로 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목표였던 본선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지지 않는 축구, 이게 신태용의 축구일까요? 아닙니다. 2014년 가을, 월드컵에서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대표팀... 다음 감독 선임 전까지 코치 체제로 운영하겠다던 대표팀을 맡은 사람이 신태용 코치입니다.
그 해 가을, 신태용 코치가 이끌었던 평가전 두 게임을 기억하십니까? 베네주엘라에게 3대 1로 역전승했고, 우루과이에게는 1대0으로 아쉽게 졌지만 경기는 박진감 넘쳤습니다. 그때 그 두 경기만큼 시원하고 통쾌했던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언제 봤었습니까? 그것도 중앙아시아나 중동 팀이 아니라 남미의 강팀과 상대한 경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그 평가전 두 경기에서 보여준 축구가 감독 신태용이 추구하는 축구입니다.
K리그를 살리는 것도 좋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축협이 닭짓을 하고 뻘짓을 해도, 적어도 팬들만큼은 원칙에 맞고 상삭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7월 초에 후임 감독 선임할 때 히딩크를 언급했었다면 저도 지금처럼 반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때 히딩크가 마지막 두 게임을 맡아서 본선에 진출시켰다면 좋았겠죠. 본선까지도 당연히 맡겼을 거고요. 하지만 본선진출이 불안했던 두 달 전에는 가만히 있다가 막상 본선 진출을 확정하자 대표팀 감독 자리에 욕심을 낸 거라면, 기회주의적인 행태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설마 한국의 국민영웅이면서 명예한국인이기도 한 히딩크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태용 감독은 한국 축구의 비주류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축구계에서 홍명보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입니다. K리그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한국축구 대표팀에서 외면당했던 흙수저였던 신태용. 그러나 결국 국가대표 감독에까지 오른 신태용. 저는 그래서 신태용을 응원합니다. 김호, 최강희... 대표팀의 비주류 감독 계보입니다. 주류 감독만큼 각광을 받지는 못했어도 팀을 맡았을 때에는 성적을 냈던 감독들, 그러나 성적을 냈으면서도 이용만 당하고 팽당했던 감독들... 그런 한국 축구의 비주류 감독 계보를 신태용에게 뒤이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독 교체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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